발이 저리면 "오래된 당뇨 환자들 얘기"라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. 그런데 이 통념은 정확히 절반만 맞다. 혈당이 아직 당뇨병 기준에 닿지 않은 단계에서도 신경 손상은 이미 시작될 수 있다.
통념의 출발점
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전통적으로 ‘당뇨를 오래 앓은 사람에게 생기는 합병증’으로 설명돼 왔다.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공식 질환 안내 역시 말초신경병증을 "당뇨를 오래 앓은 경우 의심해야 한다"고 표현한다. 이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. 문제는 ‘오래’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오해다. 많은 사람이 발 저림을 당뇨 진단 이후, 그것도 수년이 지난 뒤에야 나타나는 신호로 받아들인다. 진단조차 받지 않은 상태라면 발 저림을 당뇨 전조증상으로 연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.
이 오해는 임상 현장의 언어 습관과도 무관하지 않다. 합병증을 설명할 때 혈당이 높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됐을 때의 결과로 제시하다 보니, 역으로 ‘아직 당뇨도 아닌데 신경이 손상될 리 없다’는 인식이 굳어진다.
당뇨 전단계에서 이미 시작되는 손상
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이 2024년에 발표한 연구는 이 통념에 구체적인 균열을 낸다. 내당능장애 환자, 즉 혈당이 정상보다 높지만 아직 당뇨병 진단 기준에는 못 미치는 상태의 환자 중 16%에서 신경 이상 소견이 확인됐다. 당뇨병 확진 환자에서는 같은 이상 소견이 41%에서 나타났다. 수치의 차이는 있다. 그러나 16%라는 숫자는 무시하기 어렵다. 당뇨 전단계 환자 여섯 명 중 한 명꼴로 이미 신경에 이상이 생긴 셈이다.
대한가정의학회 저널이 2023년 보고한 자료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. 발 합병증으로 진단받은 환자들 모두에게 사전 자각 증상으로 발 저림이 있었고, 그 증상 발생 시점부터 정식 진단까지 평균 7.4년이 걸렸다. 저림이 있었음에도 당뇨와 연결하지 못한 채 7년 넘게 흘려보낸 것이다.
발 저림은 당뇨 합병증의 결과가 아니라, 혈당 이상이 신경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초기 신호일 수 있다.
통념이 맞는 지점, 틀린 지점
통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.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혈당이 높게 유지되는 기간이 길수록 진행 속도가 빠르고 증상이 뚜렷해진다. 당뇨 확진 환자의 41%에서 신경 이상이 발견된다는 수치는, 당뇨를 오래 앓을수록 위험이 높아진다는 방향성을 뒷받침한다.
틀린 지점은 ‘전제’다. 신경 손상이 당뇨 확진 이후에야 시작된다는 전제가 문제다. 내당능장애 단계에서 이미 16%의 신경 이상이 확인된다면, 발 저림을 당뇨 전조증상으로 볼 수 있는 범위는 훨씬 앞당겨진다. 증상 자체도 구별이 필요하다.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의 발 저림은 양쪽 발이 동시에, 발끝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오는 패턴을 보인다. 밤이나 저녁에 심해지는 것도 특징이다. 한쪽에만 생기거나 앉거나 서는 자세와 연관되는 저림은 척추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. 이 차이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감별의 출발점이다.
발 저림이 있을 때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것
첫째, 저림의 패턴을 기록한다. 양쪽인지 한쪽인지, 발끝에서 시작하는지 허벅지에서 내려오는지, 밤에 심해지는지 걸을 때 심해지는지. 이 정보는 진료 시 감별 진단에 직접 쓰인다.
둘째, 혈당 검사를 미루지 않는다. 발 저림을 당뇨 전조증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조건은 당뇨 확진 여부가 아니라 혈당 이상 여부다. 내당능장애 단계에서도 신경 이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, 공복혈당이나 당화혈색소 수치를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라면 검사가 먼저다.
셋째, 메트포르민을 장기 복용 중이라면 비타민 B12 수치를 함께 확인한다. 메트포르민은 B12 흡수를 저해할 수 있고, B12 결핍 자체가 발 저림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. 당뇨약을 먹고 있는데 저림이 생겼다면 이 가능성도 배제할 필요가 있다.
미국당뇨병학회가 2024년 가이드라인에서 발 관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언급한 수치가 있다. 적절히 교육받고 관리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궤양·절단 같은 중증 합병증 발생률이 40~50% 이상 낮았다. 조기 인식과 관리가 실제로 차이를 만든다는 근거다. 발 저림이 ‘아직 나와는 먼 얘기’라는 판단이 그 40~50%의 차이를 만드는 변수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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